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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연수·세미나] '씬짜오~' 베트남 다낭을 가다
    • 관리자
    • 업데이트 2023-10-12 11:06
    • 조회수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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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뉴스1 전북본부 사회부 강교현 기자입니다. 지난 6월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멈춰있었던 전북기자협회 해외연수가 4년만에 재개됐습니다. 


    회사 선배들의 배려와 지원 덕에 막내 기자인 제가 해외연수에 참가해 베트남 다낭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3박5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낭에서 보냈던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웃음 짓게 됩니다.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 해외연수도 베트남 다낭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아, 다시 한번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다낭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모두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저와 함께 다낭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먼저 다낭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숙소로 이동하면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오토바이였습니다. 버스 안에서 '우와~'라며 감탄하는 소리가 들리자, 현지 가이드는 "베트남에서는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다"며 "베트남 국민들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운전할 줄 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로에는 자동차와 그보다 더 많은 오토바이가 서로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선배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다음날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세계 열강 틈 속에 아픔 겪었던 베트남 근·현대사


    먼저 모든 여행의 기본은 지역의 역사와 정보를 알고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간단히 베트남 역사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19세기 프랑스의 식민 지배로 수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카톨릭 신앙을 전파하려는 시도는 베트남 사회와의 갈등을 낳았고, 프랑스는 카톨릭 탄압을 핑계로 베트남을 정복하려 했습니다. 결국 다낭을 시작으로 1883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돼 식민지가 됩니다. 이런 시대 상황에 베트남은 문화적·경제적 탄압을 경험했으며, 식민지가 된 뒤 독립운동을 이어나갔습니다. 


    1930년에는 사회주의 성향의 민족주의자들이 베트남 공산당을 결성합니다. 이 공산당을 이끈 사람이 베트남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호찌민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을 받아 세력이 약해지자, 일본의 보호국이 됩니다. 그리고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일본도 베트남에서 물러납니다.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은 응웬 왕조를 무너뜨리고 호찌민을 주석으로 하는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수립, 독립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지역의 지배권을 주장했고, 결국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8년간의 기나긴 전쟁 끝에 1954년 베트남은 제네바 협정으로 공식적인 독립을 이룹니다. 하지만 베트남 북부는 호찌민의 민주 공화국, 남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베트남 공화국으로 나뉘게 됩니다. 


    남북으로 분단된 베트남에서 공산당의 지지가 늘어나자,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베트남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미국 내 전쟁에 대한 지지가 떨어졌고, 결국 1973년 미군은 철수하게 됩니다. 


    베트남 전쟁은 1975년 끝납니다. 이후 하노이를 수도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베트남 역사에 대해 알아보며, 마치 과거 일제 강점기 국권을 빼앗겨 아픔을 겪고, 이어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호이안'


    첫날은 다낭에서 차로 40여분 떨어진 호이안을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됐습니다.


    15세기 이래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호이안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불리는 도시입니다.


    투본강 위를 가로지르는 배를 타고 10여분. 호이안 올드타운에 도착했습니다. 골목 구석구석에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역의 중심지 였던 만큼 시장의 역사도 무척 오래된 곳입니다. 특별히 사고 싶은 물건은 없었지만 야시장 곳곳을 누비며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해질녘 경치도 멋진 곳이지만 해가 지고 난 뒤 고요한 강가 위에 떠있는 알록달록한 소원배 등불도 장관이었습니다. 


    호이안은 과거 무역거점으로 그 어느때보다 번성했지만 현재는 비교적 조그만 관광도시로 모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백년전의 모습을, 여전히 도시가 가진 특유의 역사와 생활모습을 지키며, 관광산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발전시킨 점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해발 1487m에 세워진 바나힐…그 웅장함에 놀라다.


    바나힐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 고위 군인들과 가족들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해발 1480m 지점에 별장을 지은 것인데요, 다낭 시내보다 서늘했기 때문에 이들은 이 곳에서 휴양을 즐기고, 와인을 빚기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베트남의 대기업 중 하나인 썬기업이 인수해서 관광지로 탈바꿈한 곳입니다. 세계 2번째로 긴 케이블카와 골든브릿지 등이 유명합니다.


    프랑스 건축 양식을 비롯해 동·서양의 모습을 두루 갖춘 유원지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높은 산 중턱에 설치된 케이블카와 유원지, 골든브릿지를 보며 그 웅장함에 놀랐습니다. 가이드는 짧은 시간 둘러보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곳이라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찾아와 여유있게 즐겨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하산하는 길에 다시 긴 시간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새삼 높은 곳에 올라왔구나 느껴졌습니다.


    △미케비치 해변을 바라보는 해수관음상…"슬픈 영혼들을 위로하는 영흥사"


    다낭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크고 높은 해수관음상이 있는 사찰이 있습니다. 영흥사라는 곳입니다. 영흥사 해수관음상은 68m 규모로 아파트 30층 높이에 해당하는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웅장함 만큼 아픈 이야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공산주의 진영의 북베트남이 승리하게 됩니다. 이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정치인과 관료, 군인, 부유층들은 보트 탈출을 감행합니다. 이 때 수십만명 이상이 미케비치 일대를 통해 탈출했지만, 탈출하지 못하고 바다에서 죽은 사람도 5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불상이 해수관음상입니다. 현재에도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불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생이별한 이산가족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요? 전쟁과 이념 등의 이유로 고국을 떠나려다 생을 마감한 사람들과 살아남은 가족들의 당시 심정이 어땠을 지 생각하면 숙연해 졌습니다. 


    △야경 감상을 끝으로 '다낭'과의 이별…"비타민 같은 시간"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은 다낭 도시의 야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커피 한 잔을 하며 바라보는 다낭의 모습은 마치 밤 하늘에 수놓은 별 들을 바라보는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연수는 제게는 '비타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무엇보다 좋은 선배들과 함께 한 시간이기 때문에 더욱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연수였던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다낭'에 꼭 한번 가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뉴스1 전북취재본부 강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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