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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기자 밖 세상! 산에서 즐거움을 찾아요!"
    • 관리자
    • 업데이트 2023-10-12 09:56
    • 조회수 233

    기자들은 항상 바쁘다. 아니 항상 바쁜 척한다. 취재하느라, 기사 쓰느라, 술 마시느라, 핑계늘어 놓느라…, 

    이러다 보니 몸과 마음도 항상 아픈 거 같다. 이 아픔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 산을 찾는다! 

    돈은 적게 들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유라는 생각에 너도나도 산을 좋아한다. 

    하지만 왜 좋아하는 지는 다 생각이 다르다. 누가 기자가 아니랄까봐…. 

    산을 좋아하는 이유, 한 번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1. 2023년 폭염(暴炎) 속 지리산. '백무동~천왕봉' 왕복 9시간.


    

    김일현 사진.jpg

     2023년 8월 초. 

     

    올해 37번째 산행은 지리산이었습니다. 지리산을 가려면 그래도 마음의 준비도 좀 하고, 배낭도 미리 챙겨놓고 해야 하는데, 저녁 먹다가 갑자기 지리산 가 볼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동서울터미널 표를 검색했는데, 밤 11시59분 지리산 백무동으로 출발하는 좌석 하나가 남았습니다. 

    지리산 가는 버스표는 1~2주일 전에 거의 매진인데, 진짜 다행. 저녁식사하고 11시45분 쯤에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합니다. 

    밤 11시59분에 출발하면 대략 새벽 3시30분~40분쯤 '백무동'에 도착합니다. 중간에 휴게실을 한 번 들러요. 오늘 기사님은 "시간은 5분 드립니다"라고. 그래서 후다닥 다녀왔어요. (저번 기사님은 10분 주신 거 같았는데) 근데 대부분 잠이 들어 있어서 안 가는 사람이 더 많은 듯. 

    

    새벽 3시30분에 백무동 도착해서 간단히 배낭 정리하고 헤드랜턴을 착용합니다.  

    3시45분에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는데 등산로가 새까맣게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나이 들어도 겁이 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지. 

    더욱이 요즘, '악귀'에다가 '심야괴담회' 이런 걸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혼자 칠흑(漆黑)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니 발이 안 떨어집니다. 겁 먹을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났는데~.

    그래도 용기를 내서 올라가 봅니다만, 10분 정도 가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어, 뒤로 다시 내려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뒤따라 올라오고 있더군요. 

    '그 분', "제가 랜턴을 안 가져와서, 앞에서 좀 비춰주세요~" 

    나. "아. 네. 알겠습니다. 조심해 오세요" 하고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올라갑니다. 그 분 아니었으면 내려갔다가, 좀 환해진 뒤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어찌 됐든 그 분으로 인해 다시 어둠 속으로 올라갑니다. 근데 이상한 게 한 20분 올라가니 그 분이 안 보입니다. 

    "뭔 일이지?" 혹시라도 다쳤으면 소리를 질렀을 텐데? 아니면 "먼저 올라가세요"라고 말이라도 했을 텐데?


    산행 시작 거의 한 시간이 돼도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8월 한 여름이라 해가 좀 일찍 뜰거라 생각했는데, 지리산은 여전히 암흑입니다. 오로지 헤드랜턴의 불빛과 지리산의 무시무시한 돌계단만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그나마 계곡 근처에서 하늘을 보니 달은 보입니다.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그런 달이요. 


    5시10분에 참샘이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부턴 어렴풋 하늘이 보입니다. 계단길도 점차 또렷하게 보이구요. 참샘에서 헤드랜턴을 벗었는데 몸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아직 아무도 없어서, 참샘 벤치에 한 10분 누웠습니다. 근데도 '그 분'은 여전히 안 올라오시네요. 난 그 분으로 인해 사실은 '등 떠밀려서' 올라왔는데~.

     

    소지봉까지 올라가니, 이제는 환합니다. 소지봉에서 장터목까지 가는 길은, 산행 난이도가 조금 낮아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7시20분에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합니다. 장터목은 그 옛날 지리산 인근에 살던 사람들이여기에서 만나 장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터목이라 한답니다. 대단한 조상님들, 여기까지 물건을 갖고 와서 장을 열었다구요? 상상이 안 갑니다.  

    장터목에서 잠시 쉬면서 "천왕봉으로 가지 말고 옆 세석 코스로 빠져서 백무동으로 내려갈까" 5분 정도 고민 했어요. 천왕봉 오르는 게 조금 힘에 부쳐서. 세석으로 가면 천왕봉 반대 편으로 돌아서 백무동으로 다시 내려갈 수 있거든요.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발길은 이상하게도 천왕봉 쪽으로 움직입니다. 생각과 몸이 완전히 엇갈리는데, "도대체 나의 주인은 누구?"라는 질문을 올라가는 내내 던져봅니다. 

    

    백무동 등산로 입구에서 4시간 40분 걸려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했어요. 새벽이라 속도 내기가 어렵고, 산행 자체가 끝없는 오르막이니 힘듭니다. 보통, 중급자 정도면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천왕봉에 오르면 이상하게도 항상 붐벼요. 오늘 백무동에서 올라 온 이는 아마 내가 처음일 텐데, 백무동이 아닌 중산리 쪽에서 오거나 또는 장터목(대피소)에서 1박하거나, 아니면 지리산 종주하는 분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천왕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천천히 내려옵니다. 하산 길에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길조, 구름을 봤습니다. 봉황을 닮아서 '봉황구름'이라고 이름 붙여 봤어요. 

    내려오는 길에 장터목에서 다시 한번 쉬고, 백무동까지 원점으로 하산. 

    12시50분이 돼서 백무동 입구에 도착했으니, 오늘 산행 시간은 꼭 9시간입니다. 

    내려오니 섭씨 32도. 체감온도는 40도 정도는 되는 듯. 아스팔트가 너무너무 뜨겁습니다. 에어컨을 켠 차량이 제일 부러워요. 

    작년에도 8월에 왔는데, 올해도 8월. 올해는 진짜 더워서 내년 8월에는 안 올 생각이긴 한데. 어떻게 될 지는 모릅니다. 아마 또 오지 않을까? 

    그나저나 글을 쓰는 지금도 미스테리. 새벽에 뒤따라 오시던 분, 어디 가신 거에요? 왜 안 보이셨나요?


    <오늘의 지리산 일정>

    23:59 동서울터미널 출발

    03:30 백무동 시외버스주차장 도착

    03:44 산행 시작~장터목

    08:25 천왕봉

    08:40 하산 시작~장터목

    12:50 백무동 원점으로 하산 완료

    14:30 백무동 시외버스 출발

    18:40 서울남부터미널 도착

     

                                                                                                                                                                                                                                          <전북중앙신문 김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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