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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연수·세미나] 76년 흐른 '제주 4.3사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픔'
    • 관리자
    • 업데이트 2024-04-18 18:13
    • 조회수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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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언론재단 연수

     

    전북기자협회 소속 기자 6명은 지난달 28일 비가 오는 악조건 상황 속에서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위해 군산공항에 모였다.

     

    76주년을 맞이한 ‘제주 4·3사건’에 대해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2박 3일간의 전문연수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폭력의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첫째 날 교육은 ‘제주 4·3, 기나긴 침묵 밖으로’를 펴낸 허호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의 강의였다.

    해당 강의에서는 해방 전후 제주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진실을 들을 수 있었고 진상규명 과정에서 언론이 수행한 역할을 되새길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다음 날 교육에는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과 제주 4·3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을 역임했던 오승국 시인이 평화기념관에서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제주 4·3에 대해 소개했다.

    또 너븐숭이 4·3기념관을 방문하고 제주 4·3사건을 세상에 알린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된 옴팡밭, 집단 학살의 현장인 북촌초등학교, 당팟 등 북촌 마을 곳곳을 답사하며 숨겨진 마을 주민들의 고통과 아픔의 실상을 듣고 마음으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4·3평화공원에 위치한 위패방안실과 행방불명 표석지였다.

    위패봉안실에는 4·3의 희생자로 공식 인정된 1만 4,768명 중 생존 희생자 114명을 제외한 1만 4,654명의 위패가 봉안된 곳이다.

    하지만 위패만큼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김계생의 1·2·3·4’와 ‘오달용의 자’와 같이 당시 미처 출생신고가 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어린 나이에 이름도 없이 희생당한 것으로 파악되는 이들도 있었기에 슬픔은 두 배가 됐었다.

    여기에 위패봉안실 건너에 위치한 행방불명 표석지는 4·3사건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인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표석 4,000여 개가 줄지어 세워져 있는 곳이다.

     

    행방불명인 대부분은 당시 제주4.3중 체포돼 제주와 육지 곳곳의 형무소로 이송된 후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표석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출생년월만 새겨져 있을 뿐,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어 참담한 심정이 들고 가슴이 아파왔다.

     

    제주 4.3사건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 및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이로 인한 희생자는 약 3만여 명이다.

     

    하지만 4.3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76년이 지난 지금에도 당시 연대장이었던 함병선, 송요찬 등 학살 주범으로 꼽혔던 이들에 대한 책임자 처벌이 없다는 문제가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만큼 희생자와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하루빨리 핵심 쟁점에 대한 진실한 규명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라일보 홍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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